대만 조각의 환상의 걸작=소재불명 60년, 東京예술대학에 [귀향]하기까지
台湾彫刻の幻の傑作 所在不明60年、東京芸大に「里帰り」するまで
2024/8/30 05:30 https://mainichi.jp/articles/20240829/k00/00m/030/158000c
일본 大正시대, 대만人 최초로 東京미술학교(현 東京예술대학)에 입학한,
조각가 黄土水(1895~1930년).
그 대표작인 조각상 [甘露水](1919년)가 모교, 東京예술대학에 귀향한다.
[대만의 비너스]로도 불리는 걸작은, 戰後 대만에서 자취를 감춰, 환상의 존재가 됐다.
그 [발견]에 진력한 台北教育大 北師美術館 창설자로 종합 프로듀서인 林曼麗씨가, 그 비화를 每日신문에 말했다.
대만人 첫 帝展 입선
黄土水는 대만의 일본 통치가 시작된 1895년, 台北에서 태어났다.
대만 총독부 국어학교(현 台北教育大)에서 木彫 재능을 인정받아, 1915년 대만人 최초로 東京美術学校 彫刻科 木彫部에 입학했다.
高村光雲에 사사하면서 스스로 서양 대리석 조각을 배웠다.
黄土水는 고향 대만을 강하게 의식, 작품에 담았다.
대만을 자신의 정체성에 접목시켜 예술로 표현한 선구적인 존재가 됐다.
[甘露水] 戰後, 소재 불명으로
1920년, 제2회 帝展에서 대만 원주민의 소년像 [蕃童]이 입선했다.
대만人 첫 쾌거였다.
이번에 공개되는 [甘露水]는, 다음해 1921년 제3회 제전에서의 입선 작품.
대리석 조각상으로, 나신의 여성이 커다란 조개껍질을 뒤로 하고 선 모습에서
[대만의 비너스]라고도 칭한다.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편, 늠름한 모습이다.
林曼麗씨는 "팔다리가 길고 날씬한 서양적 여성상이 아닌, 건장한 몸매로, 매우 대만답다. 甘露水는 불교 용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담아, 자신의 마음에 내재된 대만에 대한 생각을 형상화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黄土水는 합계 4회 帝展에 입선, 천재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다.
일본 皇室과 정재계의 유력자로부터도 제작 의뢰가 잇따랐다.
하지만 1930년, [水牛群像] 제작중의 무리로 35세의 젊은 나이로 病死했다.
死後, 작품은 대만으로 옮겨졌는데, 甘露水는 戰後 이내 행방불명됐다.
대만 근대 조각의 선구자
대만에서는 근년, 대만을 주체라고 생각하는 대만 아이덴티티의 확산을 배경으로, 대만 미술 연구가 활발해졌다.
대만 근대 조각의 파이오니아인 黄土水의 걸작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林曼麗씨는 환상의 감로수를 찾았다. …
<[光, 대만 문화의 계몽과 자각]에서 전시된 [甘露水](촬영 黄邦銓, 林君昵)=北師 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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