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溝橋 사건 75년, 中/日 대화 유지 노력을…기념관 부관장 每日신문 7월 8일
盧溝橋事件75年:日中対話維持へ努力を…記念館副館長 毎日新聞 2012年07月08日10時41分)
http://mainichi.jp/select/news/20120708k0000e030121000c.html
【北京=工藤哲】中日전쟁(1937~1945년)의 발단이 된 盧溝橋(노구교) 사건으로부터 7일 75주년을 맞는 것에서, 盧溝橋 근처에 건립하는 역사 전시 시설 [중국인민 항일전쟁 기념관]의 李宗遠(42) 부관장이 7일, 每日신문 취재에 응했다.
李宗遠 부관장은, 근년, 일본의 정치인이 기념관을 찾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시, 역사와 영토 문제로 中日 관계가 긴장돼도, 대화를 유지하는 노력이 불가결하다는 생각을 표시했다.
李宗遠 부관장은, 1995년 村山富市 수상, 2001년 小泉純一郎(코이즈미 쥰이치로) 수상(모두 당시 )이 기념관을 방문했지만, 근년에는 영향력이 있는 정치가가 방문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
일본내의 역사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 배경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견해를 표시했다.
또 中日 관계의 현상을 [일시적인 안개에 덮인 상태]라며, [역사와 영토 등의 민감한 문제는, 복잡하면 양국간의 긴장이 한층 높아진다]고 말했다.
尖閣諸島(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문제를 염두에 [영토 문제는 상대의 도발을 기도하는 일부의 인간이 대중을 선동하는 것에서, 양국 관계의 발전에 불리한 상황이 된다]라는 위기감을 표시, [지금이야말로 정부간의 (냉정한)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盧溝橋=루거우차오) 사건이란..
盧溝橋는 北京에서 남서 약 15km에 있는 1192년 金나라 때 건설된 석조 아치형 교량이다.
전장 266.5m로 11개의 아치가 있고, 그 다리 기둥마다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모양이 다르다.
元나라 때 이곳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보고 <전세계에 비할데 없을만큼 훌륭하다>라고 극찬한 교량이다.
그래서 盧溝橋의 영어식 이름은 마르코폴로 브릿지라고 한다.
--------------------------------------------------------------------------
그런데 1937년 7월 7일, 이곳에서 中日전쟁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7월 7일 오후 22시 40분경, 盧溝橋 아래를 흐르는 永定河 동쪽에서 연습중이던 支那주둔 일본군 보병 제1연대 제3대대 8중대에 대해 누군가가 龍王廟 쪽에서 몇 발의 총격을 가했다.
8중대는 급히 인원을 점검했는데, 병사 1명이 행방불명인 것이 판명됐다.
사건발생 보고는 淸水節郞(시미즈 세츠로)중대장에 의해 우선 豊台의 一木淸直(이치키 키요나오) 대대장,
그리고 北平(현재의 北京)의 牟田口廉也(무다구치 렌야) 연대장에게 보도됐다.
그런데 23시경 행방불명된 병사가 귀대했다.
(당시 소대장의 수기에 의하면 전령으로 나간 것이라고도 하고 또는 용변중이었다고 한다)
사건발생 후 1일이 지난 8일 새벽 3시 25분, 龍王廟 쪽에서 다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에 전령으로 나갔다 온 岩谷 조장은 중국 국민당 군진지 가까이서 총격을 받았노라고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고 새벽 4시경 일본과 중국의 합동조사단이 北平으로 출발했다.
5시가 되어 조사단의 일본군 櫻井 중좌, 寺平 보좌관이, 宛平県城, 盧溝橋 역내에 도착해, 중국 측 간부와 사건 교섭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전 5시 30분, 총격을 받았던 일본군 8중대는 협상 시작 전인 4시 30분에, 상부의 진격과 포격 허용이 명령이 떨어지자, 중국군 진지를 향해 전진을 시작했다.
이에 국민당 군은 격한 사격을 개시, 일본군도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결국 일본군과 중국군간에 정면 충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2시간 후인 7시 30분경 양군의 전투는 일단 중지됐다.
그러나 오후 15시 30분부터 다시 전투가 재발하는 등 일시적인 전투가 벌어졌으나, 다시 소강 국면을 맞아, 중국과 일본 조사단간에는 정전 협상이 벌어졌다.
한편 이날 아침 사건 전모가 일본 육군 중앙부에 보고됐다.
일본 군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중국 측에 일격을 가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확대파와, 소련군과의 충돌을 대비해 군비를 우선해야 한다는 否전파로 나뉘어 격론이 벌어졌다.
7월 9일, 새벽 2시경 中日협상단은 정전에 협의하고 양국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관동군은 일본 정부에 일본군의 증원을 요구,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은 중국 측에 있다며, 담당자의 처벌과 사죄를 요구했다.
이에 7월 10일, 橋本 참모장은 중국 측에 대해, 사죄와 책임자 처벌, 盧溝橋에서 철수, 항일 단체의 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제출해, 중국 측과의 정전협정은 결렬됐다.
한편 일본 군부와 정부는 支那 주둔군의 자위와 거류민 보호를 명목으로 증원 파병을 결정했는데, 사실 군부가 정부와 의회에 <국민당 중앙군이 북상중>, <현지정세 급박>이라는 과대선전으로, 사태를 과장, 위협한 면이 매우 컸다.
7월 11일, 일본 정부의 軍 증원 파병이 발표되자, 중화민국 당국은 크게 반발했는데, 일본군 보병 1연대는 이미 盧溝橋 국민당 軍기지를 점령한 후였다.
7월 19日, 蔣介石은 <최후의 관두>라는 연설을 통해 중국 측의 항일 의지를 공식으로 밝히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8일 北지나 방면에서 일본군과 중국군과의 전면전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中日전쟁의 시작이었다.
盧溝橋 발포를 누가 했는지에 관해서는, 지금도 中日 양국의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 측에서는 중국의 29軍이 우발적으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 측은 일본군의 확전을 대비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한다.
또 일부에서는 <공산당 음모론>이란 주장이 있는데, 중국 공산당이 세력 확장을 위해, 국민당軍에 섞인 공산당 병사들이 劉少奇의 지시를 받아, 일본과 국민당간의 확전을 벌이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이 발포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사진 盧溝橋>
---------------------------------------------------------------------------------
베트남에서 또 反中 데모-南지나해 문제로 항의 日本경제신문 7월 8일
ベトナムでまた反中デモ 南シナ海問題で抗議 2012/7/8 15:43
http://www.nikkei.com/article/DGXNASFK0800G_Y2A700C1000000/
【프놈펜=伊藤学】베트남의 수도 하노이市에서 8일, 南지나해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중국에 항의하는 데모가 발생했다.
反中 데모가 일어난 것은 1일에 이어, 2주 연속.
데모대는 市 중심에서 駐 베트남 중국 대사관으로 향해 행진했다.
이웃 나라 캄보디아에서는 9일부터,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외무相회의와 ASEAN 지역 포럼(ARF)이 열려, 南지나해 문제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평소에는 데모 단속이 엄한 베트남 당국이 지난주에 이어 反中 데모를 용인한 배경에는, 국제사회에 중국에 대한 항의하는 의사를 표시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폭탄 터져 민간인 14명 사망=아프간 남부 時事통신 7월 8일
爆弾で民間人14人死亡=アフガン南部
http://www.jiji.com/jc/c?g=int_30&k=2012070800087
【카불 AFP=時事】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州에서 8일, 도로가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 민간인 14명이 사망, 3명이 부상했다.
현지 경찰 당국자는 [트랙터와 소형 트럭이 폭탄에 접촉해 폭발이 일어났다]라며, 반정부 세력 탈레반의 범행이라는 견해를 표시했다.
아프간 남부에서는 7일 폭발과 로켓탄 공격에 의해, 아동 4명을 포함한 민간인 11명이 사망한 바로 직후다.
동국에서는 최근 5년간, 민간인 사망자수 계속 증가하고 있어, 유엔에 의하면, 작년에는 3021명이 사망, 과거 최악을 기록했다.
(2012/07/08-15:45)
----------------------------------------------------------------------------
첫 외유는 사우디=이집트 대통령 時事통신 7월 8일
初外遊はサウジ=エジプト大統領
http://www.jiji.com/jc/c?g=int_30&k=2012070800085
【카이로 時事】이집트 정부계 중동 통신은 7일, 지난달말 취임한 모르시 대통령이 첫 외유로, 11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압둘라 국왕과 관계 강화와 중동 정세를 둘러싸고 회담한다.
국왕이 모르시 대통령의 방문을 초청했다.
모르시氏는, 이집트 최대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이슬람교 동포단 출신.
사우디를 첫 외유처로 한 것은, 이슬람교 수니派의 맹주인 동국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화하는 기대를 표시하는데 있다.
(2012/07/08-15:32)